난 2001년 겨울, 중국에서도 가장 끝에 있는 해남도라는 섬에서 강제징용자를 발굴하는 데 참여하게 되었다.
해남도에서 내가 느낀 발굴의 세계는 또 다른 겸손함과 신성함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. 나름대로는 발굴을 꽤 오래 해 왔다고 자신해 온 나였지만 그곳에서 본 모습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.
공 ·동·묘·지...
한마디로 얼른 표현하기에 지금 이 한마디 외에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. 더운 날에 지금껏 삽질을 열심히 한 보람이 헛되지 않았는지 유해는 한꺼번에 꽤 많은 수가 나왔는데 모두 한결같이 머리를 동쪽으로 두고 나란히 누워있었다.
내 머리는 굳어버렸지만 내 가슴은 그때 다른 어떤 순간보다도 더 세차게 뛰고 있었다. 그 순간 전쟁은 참 많은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짧게나마 가져 볼 수 있었다.
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기리고자 하는 위령제가 현장에서 열렸다.
그러한 일련의 행사를 지켜보면서 그 시간 그 자리에 모인 각자의 사람들 모두 나름대로의 느낌은 달랐겠지만, 가슴 속 마지막 끝 언저리에 품은 마음은 모두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.
그렇게 세찬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던 날의 위령제도 끝났지만 발굴 작업은 계속되었다. 발굴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화가 났다. 모든 것에 대해서, 정확히 누구에 대해서 어떤 것에 대해서 화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점점 더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정도로 화가 났다. 그리고 어깨가 무거워졌다.
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작기도 했지만 너무나 많은 부분들이 더 필요하고 이를 위해 더 많은 사람,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에…
그러한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흘러 1월 18일 발굴 작업이 종료되기까지 총 35구의 유해가 발굴되었다. 모두 머리를 동쪽 방향으로 두고 있었으며 한결같이 불에 탄 흔적이 남아있는 상태 그대로…
떠나는 그 순간까지 해남도 조선촌에서 느꼈던 내 생각들과 내 감정들을 다 정리할 수는 없었다.
그건 내가 지금 돌아와 이 글을 쓰면서도, 아니 어쩌면 영원히 다 정리되지 못할 숙제일지도 모른다.
어쩌면 만리타국에서 쓸쓸히 강제노역에 쓰러져 간 조선촌 징용자의 넋두리가 내 뇌리 속에 박혀 이 곳 고국 땅에 왔는지도 모를 일이리라.
< 2001년 2월의 첫날에… > 유해발굴센터 연구원 우은진